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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위쳐 시리즈 스토리 정리 - 3부

 

 

 

연재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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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쳐 스토리 총정리 1부 - <지난편 링크>

- 더 위쳐 : 세계관

- 더 위쳐 : 운명의 검

- 더 위쳐 : 운명 이상의 것

 

■ 위쳐 스토리 총정리 2부 - <지난편 링크>

- 더 위쳐 : 마지막 소원

- 더 위쳐 : 가능성의 한계

- 더 위쳐 : 얼음조각

- 더 위쳐 : 엘프의 피

 

■ 위쳐 스토리 총정리 3부 현재 페이지 

- 더 위쳐 : 경멸의 시간

- 더 위쳐 : 불의 세례

- 더 위쳐 : 제비 탑

- 더 위쳐 : 호수의 여인

 

■ 위쳐 스토리 총정리 4부

- 더 위쳐 1

- 더 위쳐 2

- 더 위쳐 3

 

BGM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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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네드 섬에는 각지의 주요 인사와 북부 마법사들이 모여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예니퍼는 게롤트를 만찬회장에 데려가 은근히 금슬을 과시했다. 안 그래도 소문이 자자했던 터라 여자 마법사들의 시선이 모두 게롤트에게로 모였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남자이길래 그 도도한 예니퍼가 그에게 빠져들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되지도 않는 임신까지 하려고 애를 썼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부는 납득했다. 게롤트는 확실히 매력적인 남자였고, 몇몇은 예니퍼를 질투하기까지 했다. 

 

 

타네드 섬의 연회에 참석한 게롤트와 예니퍼

 

 

캐드웬의 자문 마법사인 사브리나는 속살이 비치는 옷으로 장난삼아 게롤트를 유혹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게롤트의 눈이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돌아가자 예니퍼는 한눈팔지 말라며 경고하는 등 경계심을 한껏 높여야 했다. 예니퍼의 친구인 마가리타는 누구보다 풍만한 몸매로 시선을 끌었고, 색정광으로 소문난 소서리스 마티는 게롤트에 대한 흑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마티에 못지않게 색정광으로 유명한 여마법사 키이라는 최음제를 만드는데 특기가 있어 예니퍼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심지어 옷들이 유두도 비친다. 눈이 안 돌아갈 수가.....

 

 

하지만 예니퍼가 무엇보다 신경 쓰인 대상은 트리스였다. 게롤트와 트리스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던 예니퍼는 트리스에게 다가가 내 남자에게 다시는 작업 걸지 말라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생면부지의 남도 아니고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그랬으니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트리스는 성격상 별말 못하고 그저 쑥스러워 하는 모습만을 보였다.

 

 

불꽃 튀는 두 연적

 

 

게롤트는 연회장에서 르다니아의 정보국장 딕스트라와 르다니아 자문 마법사인 필리파를 만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필리파는 마법사 형제단의 빌제포츠가 닐프가드 측과 내통했다는 사실을 안 뒤로 그와 이미 손절한 상태였다. 그녀는 게롤트에게 리엔스를 넘겨주겠다고 약속하며 빌제포츠를 조심하라는 언질을 준다. 또한 딕스트라는 게롤트에게 빌제포츠로부터 무언가 제안이 들어올 것이라 일러주었다.

 

딕스트라의 예상대로 얼마 후 빌제포츠는 예니퍼를 통해 게롤트를 조용한 곳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예니퍼는 물론 대다수의 마법사들이 빌제포츠의 본질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빌제포츠는 자신의 속내를 철저히 감추고 행동하는 이중인격자였기에 닐프가드와의 내통 사실은 물론 그의 진짜 성격이나 야망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게롤트를 만난 빌제포츠는 자신이 닐프가드와 손잡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게롤트에게 자신에게 시리를 넘겨주고 함께 일하자고 제안해왔다. 물론 게롤트는 단칼에 거절했다.

 

 

빌제포츠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던 르다니아 정보국장 딕스트라

 

 

연회 다음날, 사단이 벌어진다. 딕스트라와 필리파가 닐프가드에 부역하는 마법사들을 색출하여 반역 음모를 밝히겠다며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숙소에서 똥 누러 가다가 우연찮게 이 상황에 껴들게 된 게롤트는 딕스트라로부터 한 가지 요구를 받는다. 시리를 르다니아로 데려오면 전쟁을 막을 수 있으며 신변도 안전해질 테니 그녀를 넘겨달라는 요구였다. 게롤트는 대답 대신 딕스트라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후에 위쳐3에서 다리에 깁스를 하고 나오는 이유가 이것.)

 

게롤트와 딕스트라가 숙소 구역에서 옥신각신하는 동안 필리파와 정보국 요원들은 빌제포츠, 핀다베어테라노바 등의 마법사를 반역 혐의로 대거 체포하고 용의자들이 마법을 쓰지 못하도록 디메리티움(dimeritium) 수갑을 채워 심문에 들어갔다. 그러나 폭력을 원치 않는 마법학교의 책임자 티사이아 드 브리는 이러한 상황에 반발했다.

 

 

위쳐 세계관의 마법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물질, 디메리티움.

 

 

체포된 자들은 북부 마법사들과 치열한 언쟁을 벌였다. 용의자들은 북부 왕국이 닐프가드와 전쟁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필리파와 키이라, 사브리나, 마가리타, 마티 등을 위시한 북부 마법사들은 닐프가드 쪽에 붙은 마법사들이 연회에 참석한 북부 왕국 마법사들을 살해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빌제포츠는 시리를 노리는 것 외에도 에미르와 공모하여 특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소든 언덕 전투에서 마법사들의 위력을 실감한 에미르는 북부 왕국의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타네드 섬의 축제 기간에 북부 왕국의 마법사들이 모두 모였을 때 이들을 일거에 몰살하기로 한 것이다.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빌제포츠는 같은 챕터 소속의 핀다베어를 비롯한 다수의 마법사들을 회유하여 닐프가드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리엔스를 비롯한 자신의 부하들이 유사시에 즉시 투입될 수 있도록 대기시켜 놓았다.

 

이중 강력한 엘프 여마법사인 핀다베어는 본래 소든 언덕 전투에도 참여한 북부 왕국 편이었다. 하지만 북부 왕국의 비인간에 대한 차별 때문에 최근 닐프가드로 돌아섰으며 이번 일을 성공하면 <돌 블라타나> 지역을 하사받아 엘프 자치구역으로 만들 수 있기를 약속받았다.

 

 

닐프가드의 편에 선 자들

 

 

티사이아는 혼란스러웠다. 누구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예니퍼에게 예언 능력을 가진 시리를 데려오도록 했다. 이때 시리는 무아경 상태에서 르다니아의 왕 비지미르 2세가 누군가에게 암살되며 이후 르다니아 왕국은 필리파가 섭정으로써 다스린다는 것과 북부 왕국이 전쟁을 준비한다고 예언한다. (실제로 북부는 비밀리에 신트라 왕국을 되찾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에 티사이아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며 체포된 마법사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마법학교를 둘러 싸고 있는 반 마법장벽(anti-magic field)을 해제해버렸다.

 

그러나 이 조치는 티사이아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닐프가드 가담자들은 도망치기는커녕 즉시 마법으로 북부 왕국 소속의 마법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핀다베어는 비밀 통로를 열어 미리 매복하고 있던 리엔스와 스코이아 텔 병사들을 타네드 섬으로 침투시켰다. 그 결과 아레투자 마법학교엔 순식간에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고, 이를 지켜본 티사이아는 반실성 상태가 된다. 기껏 르다니아 정보국이 닐프가드의 의도를 미리 간파하고 선수를 친 것인데 티사이아의 오판으로 수많은 마법학교 학생들이 희생되게 된 것이다.

 

 

폭주하는 티사이아

 

 

"일어나, 시리. 여기서 나가야 돼."

 

예언 이후 잠시 기절해있던 시리가 눈을 뜨자 예니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정신을 잃은 시리를 지키고 있었다.

 

"예니퍼, 여기는 어디에요? 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괜찮아."

 

"어디로 가는 거죠? 이곳이 왜 불타고 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예니퍼는 시리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내 말 잘 들어. 주의 깊게 들어야 돼. 난 이곳에 남아 있어야 된단다. 저 계단이 보이지? 저길 내려가렴."

 

"싫어요! 나를 혼자 두지 말아요."

 

"어쩔 수 없어. 다시 말할게. 저 계단으로 내려가. 끝까지 내려가면 문들이 있을 테고, 그 문들 뒤에 긴 복도가 있어. 그리고 복도를 끝까지 따라가면 마구간이 하나 나와. 거기에 안장을 얹은 말 한 마리가 있어. 그걸 타고 숙소 구역에 있는 마가리타를 찾으렴. 그녀가 널 보호해줄 거란다."

 

"예니퍼, 전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저번에 내가 한 말 기억하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다 너를 위한 거라고! 날 믿어야 돼, 시리! 어서 가."

 

예니퍼는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시리를 마법을 이용해 기어코 탈출시켰다. 그리고 멀어져 가는 시리를 바라보며 그녀를 지금껏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호칭으로 부른다.

 

"시리... 사랑하는 내 딸... 반드시 도망치거라."

 

 

수라장에서 시리를 필사적으로 탈출시킨 예니퍼

 

 

이후 예니퍼는 핀다베어에 의해 비취 석상에 봉인된다. 그녀가 깨어나는 것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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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탑으로 들어간 건가?"

 

빌제포츠는 그 넓은 소매를 펄럭거리며 날아들어와 천천히 내려앉았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게롤트는 지금까지 시리가 갈매기 탑(Tower of Gulls)으로 도망칠 수 있도록 닐프가드의 추격을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테라노바도 그의 손에 죽었다. 이제 빌제포츠를 막는 것이 그의 마지막 과제였다.

 

 

이 모든 일의 흑막과 마주한 게롤트

 

 

"이제 정말 막바지로군. 자네는 저 탑에 대해 아는가? 저긴 출구가 없어. 모든 게 끝났다네."

 

게롤트는 한 발 물러나 정문을 둘러싸고 있는 여인상 곁에 섰다.

 

"물론 그렇겠지."

 

위쳐는 마법사의 손을 주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네놈 말대로 모든 게 끝났어. 네놈의 공범들은 반이나 죽었고, 아레투자에는 마법사 지원군과 딕스트라의 병사들이 도착했어. 그리고 저 탑... 출구가 없다고? 그거 잘 됐군. 그렇다는 건 나올 수 있는 길이 여기 밖에 없다는 거잖아. 그 출구는 내가 지키고 있고."

 

사실 게롤트는 시리가 갈매기 탑에서 포탈을 열어 도망치도록 주문해놓았다. 물론 그 사실을 빌제포츠가 알게 할 순 없었다. 시간을 끄는 게 중요했다. 게롤트의 말을 들은 빌제포츠는 역정을 냈다.

 

"자네의 무지함이 날 화나게 만드는군. 아직도 상황을 이해 못하겠나? 마법 의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어. 에미르 황제의 군대가 북쪽으로 진군하면 지원도, 마법도, 도와줄 사람도 없다고. 북부의 왕들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무력한 상태가 될 거라네. 자, 어젯밤에 자네에게 제안했던 것을 다시 한 번 말하지. 승자의 편에 붙게나."

 

"아니, 넌 패자야. 넌 그저 에미르 황제의 꼭두각시일 뿐이야. 너흰 이번에도 시리를 데려갈 수 없을 거고, 이번에도 임무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해야겠지. 에미르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한걸."

 

"오, 위쳐. 몇 가지 넘겨짚은 것 같은데, 자네가 맞춘 건 단 하나도 없다네. 반대로 생각해보지. 에미르 황제가 오히려 내 꼭두각시라고 생각하지는 않나?"

 

"개소리."

 

"정신 차리게, 게롤트. 생각을 하라고. 이 선악의 사소한 대립 때문에 계속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텐가? 다시 한 번 말하네. 아직 늦지 않았어. 난 아직도 자네와 한 편이 되는 날을 꿈꾼다네."

 

"그딴 희망은 버려, 빌제포츠."

 

 

파티 복장을 입고 대치하는 두 남자

 

 

"칼을 집어넣게. 저 위 어딘가에 고대 혈통의 아이가 혼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거야. 자네와 나, 그리고 아이와 함께 이곳을 떠나는 거야. 어떤가? 자네는 그녀와 계속 함께 할 수 있다네."

 

"헛소리. 네놈 면상에 침을 뱉어버리기 전에 꺼지시지."

 

"...게롤트. 난 자네를 진심으로 죽이고 싶지 않네. 살인을 싫어하는 쪽이라."

 

"그래? 그렇다면 리디아는 어떻게 설명할 거지?"

 

마법사는 순간 이를 악물었다.

 

"다신 그 이름을 언급하지 말게, 위쳐."

 

빌제포츠가 내뿜은 살기에 게롤트는 칼자루를 고쳐 쥐었다. 소서리스 리디아는 빌제포츠의 충직한 조수였다. 또한 그녀는 빌제포츠에게 상하 관계를 넘어 연모를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 전, 그녀는 죽었다. 빌제포츠가 디메리티움을 해제하기 위한 희생물로써. 빌제포츠는 수갑을 풀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리디아에게 최면 마법을 걸어 시간을 끌다 자­살하라고 텔레파시로 명령했다. 실제로 잠시 후 리디아는 칼을 들고 소란을 피우다 목숨을 끊었다. 빌제포츠는 겨우 몇 분의 시간을 벌기 위해 자신의 충실한 비서를 죽게 한 것이다. 게롤트는 빌제포츠를 계속 도발했다.

 

"불쌍한 리디아. 네가 리디아를 죽인 거다, 마법사. 넌 그녀를 이용했고, 이제는 시리를 이용하려고 하지. 그런데 나를 회유하겠다? 개소리하지 말라고."

 

"그 입 닥치게."

 

도발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비열하고 냉혈한 인성을 가진 그였지만 일말의 죄책감은 가지고 있었던 듯 했다. 다만 도발의 대가는 컸다.

 

"그래 좋아. 자네가 그토록 원한다면 내가 싫어하는 게 뭔지 알려주겠네. 그건 바로 자네의 오만함이야. 내가 손수 고쳐주지. 이 지팡이로."

 

 

위쳐 사가 최종보스급 빌런, 빌제포츠

 

 

빌제포츠는 압도적으로 강했다. 그는 마법을 전력으로 사용하지 않고 지팡이를 이용해 물리적으로 덤벼들었음에도 게롤트는 전혀 받아치질 못했다. 그는 매우 빠르고, 모든 것이 정확했다. 게롤트는 난생처음으로 이보다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굴욕적으로 패배하여 큰 부상을 입는다. 다행히 시리는 그동안 포탈을 열고 극적으로 도망쳤고, 한 끗 차이로 시리를 놓친 빌제포츠는 시리가 개방한 포탈의 에너지 때문에 눈 하나를 잃는다.

 

 

이후 괴사된 얼굴 반쪽은 빌제포츠 캐릭터의 시그니처가 된다.

 

 

처참히 망가진 게롤트를 발견한 것은 트리스였다. 발견 당시 게롤트는 뇌를 다쳐 코피를 연신 쏟고 있었으며 팔다리마저 산산이 부서져 꼼짝도 하지 못했다. 트리스는 게롤트가 의식을 잃지 않도록 간호하면서 그를 드라이어드의 영역인 브로킬론 숲으로 옮겼다. 한동안 그는 브로킬론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예니퍼는 여전히 봉인된 상태였고, 그들 외에도 많은 북부 마법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티사이아 역시 죄책감을 못 이겨 자­­살했다. (아레투자 교장 자리는 평소 교육에 관심 많았던 마가리타가 이어받는다.) 빌제포츠는 비록 시리를 놓쳤지만 어느 정도 목적을 이룬 셈이었다.

 

 

죄책감을 못 이겨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티사이아

 

 

에미르 황제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타네드 참사 직후 에미르는 자신의 직속 암살자 바티에를 시켜 르다니아의 왕 비지미르 2세를 암살했다. 그리고 준비해둔 32만 대군을 이끌고 곧바로 리리아 왕국의 글레비츠진겐 요새를 습격했다. <2차 북부 대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닐프가드 정보국의 수장이자 세계관 최고의 암살자, 바티에.

 

 

빌제포츠의 말대로 북부는 서로 간의 세력전을 펼치느라 그러한 재침공에 대비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게다가 타네드 사건으로 마법사들도 전력이 많이 약화된 터라 북부는 속수무책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침략당한 리리아의 여왕 메브는 북쪽의 에이단 왕국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닐프가드는 이어서 에이단 왕국의 수도인 벤거버그마저 함락시키고 돌 블라타나 영역을 집어삼켰다. 소든, 베르덴, 브뤼게 역시 닐프가드의 손에 떨어졌다. 약속대로 에미르에게 돌 블라타나 지역을 하사받은 핀다베어는 이후 스스로 그곳의 여왕으로 즉위했다. 에미르 황제는 다음으로 마하캄 산을 경유하여 테메리아와 르다니아를 침공할 계획을 세운다.

 

 

다시 한 번 북부로 치닫는 닐프가드 군

 

 

타네드 습격사건으로 마법사 형제단은 완전히 와해되었다. 필리파는 이번 일로 깨달은 바가 있었다. 마법사들이 가장 최우선해야 할 중요한 가치는 북부냐 남부냐가 아니라 그러한 왕국 간의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도록 마법사들만의 권익과 세력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급기야 필리파는 핀다베어, 트리스, 키이라, 마가리타, 마티, 그리고 쉴라와 아시르 등 출중한 능력을 가진 여마법사들을 모아 비밀결사 '로지 오브 소서리스(Lodge of Sorceresses)'를 새롭게 창설하기에 이른다. 기존의 마법사 조직과 구별되는 로지의 특징은 전원 여성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과, 북부 왕국 소속 마법사 뿐만 아니라 닐프가드 소속 마법사들도 받아들인다는 점이었다.

 

이 같은 결정에는 당연히 반발이 따랐다. 로지의 첫 번째 회담 자리에서 사브리나는 타네드 학살 사건의 주범 중 하나인 핀다베어와 닐프가드 출신의 아시르가 같은 멤버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회담을 거부하려 했다. 그러나 필리파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납득하여 회담에 참여했다.

 

이날 회담에서는 아시르와 핀다베어가 다음 회담 전까지 추가 멤버를 영입하겠다는 제안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시르는 자신의 절친이자 동료인 닐프가드 마법사 프린질라 비고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핀다베어는 자신과 같은 엘프 소서리스인 이다와 함께 자신이 봉인한 예니퍼를 떠올렸다.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었다.

 

 

마법사들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기 위해 결성된<로지 오브 소서리스>

 

 

한편 포탈 너머로 도망친 시리는 낯선 사막을 헤매고 있었다. 그곳은 닐프가드에 위치한 땅 <코라스 사막>이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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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는 부상 입은 몸에 허기와 갈증,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에 시달려야 했다. 밤에는 마법으로 그나마 몸을 조금 녹이고, 아침에는 가지고 있던 단검에 모인 이슬로 며칠을 버텼다. 그러나 결국 탈진하고 만다. 아무 준비도 없이 떨어져 홀로 버티기엔 코라스 사막은 너무나 가혹한 환경이었다.

 

 

포탈을 통제하지 못해 닐프가드의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시리

 

 

이때 시리를 도운 존재가 있었다. 오래전 멸종했던 것으로 알려진 신비의 생물, 유니콘 이화라콱스(Ihuarraquax)였다. 시리는 이화라콱스의 도움으로 간신히 오아시스에 도착해 기력을 차렸다. 이후 시리는 그 어린 유니콘에게 '작은 말(Little Horse)'란 별칭을 붙여주고 서로 도와가며 함께 사막을 지났다. 

 

 

사막에서 만난 신비의 유니콘, 이화라콱스.

 

 

한 번은 실수로 시리가 거대 개미지옥의 함정에 빠졌을 때, 그녀를 도와주려던 이화라콱스가 다리에 큰 부상을 입은 일이 있었다. 상처를 치료해주고 싶지만 그런 지식이 없었던 시리는 무리하게나마 마법을 쓰기 위해 불을 피웠다. 일전에 예니퍼가 절대로 불의 원소에서 마법력을 끌어내지 말라고 당부한 적이 있었지만 물도, 공기도, 대지도 말라버린 사막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곧 불에서 마법력을 끌어내는데 성공하여 마법력이 충만해진 시리는 배운 적도 없는 고등마법으로 유니콘의 다리를 치료하고, 심지어 비구름을 불러 모아 사막에 비를 내려 갈증을 해소하는 등 상위마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는 결국 예니퍼가 우려했던 일을 불러왔다. 불의 마력의 유혹에 빠져 끔찍한 환상을 보고 마력 제어에 실패해 폭주해버린 것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도달한 시리는 결국 쓰러지고 만다.

 

 

이화라콱스와 함께 사막을 헤매는 시리

 

 

시리를 발견한 것은 지역 갱단들이었다. 사막에서 난데없이 비구름이 모이고 비가 내리는 모습을 목격한 터라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들은 닐프가드 기사에게 고용되어 황제의 명령으로 시리를 찾아다니던 무리였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일당들은 일단 시리를 붙잡은 후 매우 험하게 다루었다. 그나마 그들을 통제하던 기사조차 다른 기사와의 결투로 죽고 나자 그런 대우는 더욱 심해졌다.

 

이후 갱단은 여관에서 다른 멤버들과 합류했다. 그들은 <랫츠>라는 집단의 멤버를 한 명 붙잡아두고 있었다. 랫츠란 소년소녀로 이루어진 일종의 범죄 집단으로, 갱단과 마찬가지로 지명수배되어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날 저녁, 여관에서 갱단들이 술을 먹으면서 긴장을 풀고 있는 동안 랫츠 멤버들이 기습하여 갱단을 몰살하고 자신들의 멤버를 구출한다. 이때 시리는 케어 모헨에서 배운 칼 솜씨로 갱단 멤버 한 명을 살해하는데, 그녀의 칼 솜씨에 감탄한 랫츠 멤버들은 시리에게 합류를 권한다. 갈 곳 없었던 시리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소년소녀로 이루어진 도적떼 <랫츠>에 가담하게 된 시리

 

 

이후 시리는 본명을 숨긴 채 팔카(Falka, 작은 매라는 뜻의 엘프어)라는 이름을 쓰며 랫츠와 함께 행동했다. 난생처음 사람을 죽인 시리는 큰 충격을 받고 한동안 힘들어했지만, 랫츠와의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거리낌 없이 강도, 살인에 가담하게 된다.

 

 

거친 삶에 적응해가는 작은 매 팔카.

 

 

랫츠의 범죄 행각은 점점 대담해져서 지역의 큰 골칫거리로 대두되었다. 결국 지역책임자인 닐프가드 재무관 스테판 스켈른과 카사디 남작은 일급의 현상금 사냥꾼 본하트에게 랫츠의 소탕을 의뢰했다. 지역 상인길드의 한 멤버가 이 사실을 랫츠에게 알리자 기고만장해있던 랫츠는 본하트를 얕잡아보고 오히려 먼저 그를 찾아 죽일 계획을 세웠다. 이때 시리의 절친 중 한 명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시리에게 이 계획에 끼어들지 말고 떠나라고 조언했고, 시리는 그녀의 말대로 본하트를 치러가기 전날 밤에 몰래 랫츠를 떠난다.

 

 

본하트를 고용해 랫츠 소탕을 의뢰한 닐프가드 장교, 스테판 스켈른

 

 

다음날 아침, 시리를 제외한 6명의 랫츠는 한 여관에서 본하트와 맞닥뜨린 후 일제히 그에게 덤벼들었다. 그들은 모두 나름 상당한 칼 솜씨의 소유자들이었다. 하지만 본하트에겐 작은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한 채 모조리 몰살당하고 만다. 시리가 다시 그들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모두 송장이 된 상태였다. 분노한 시리는 칼을 빼들고 본하트에게 덤벼들었지만 역시 상대가 되지 못하고 간단히 제압당한 후 포로가 된다.

 

※ 본하트의 목에는 늑대, 살쾡이, 그리폰을 비롯해 위쳐의 상징인 메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가 죽인 위쳐의 전리품들이다. 대부분의 위쳐는 만전의 상태에서 정면으로 붙었을 경우 숙련된 군인이라 할지라도 10여 명은 손쉽게 죽이는 인간 흉기들이다. 본하트는 그런 위쳐를 실력으로 쳐죽일 수 있는 엄청난 실력자라는 소리다.

 

 

게롤트, 레토와 함께 세계관 내 최강의 전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오 본하트.

 

 

은퇴한 용병 출신인 본하트는 돈과 살인 밖에 모르는 잔혹한 사이코패스였다. 그는 시리가 엄청난 몸값을 지닌 것을 알고 그녀를 살려두었지만 대신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하게 학대했다. 시리를 나무에 묶어놓고 죽은 랫츠 멤버들의 목을 톱으로 자르는 것(현상금을 받기 위해)을 시리가 억지로 보게 했으며, 강제로 마약을 먹인 후 도박판 경기장에서 싸움을 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들 때문에 시리는 트라우마를 갖게 되어 이후로 오랫동안 본하트에게 공포를 느끼게 된다.

 

시리를 팔아 큰돈을 벌고 싶었던 본하트는 얼마 후 한 여관에서 스테판과 리엔스를 만나 시리 처리에 대해 협상을 벌인다. 사실 스테판은 자신을 중용하지 않는 에미르 황제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자였다. 그는 본하트를 고용해 에미르의 명령대로 시리를 찾아내긴 했지만 황제에게 데려가지 않고 리엔스를 통해 빌제포츠에게 넘기고자 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빌제포츠의 힘을 빌려 자신처럼 황제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닐프가드의 귀족들과 함께 에미르 황제를 암살하고 각자 한자리씩 차지하자는 역모를 꾸몄다.

 

한편 시리는 자신에 대한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말을 훔쳐서 극적으로 탈출한다. 하지만 이 탈출 과정에서 스켈른이 던진 표창을 얼굴에 맞고 큰 부상을 입는 바람에 어느 숲에서 탈진해서 쓰러지고 만다.

 

 

시리 얼굴의 흉터는 이때 생긴 것이다.

 

 

쓰러진 시리를 발견한 사람은 비소고타라는 숲속의 은둔자였다. 비소고타는 왕년에 옥센푸르트 대학과 닐프가드 왕립 아카데미에 동시에 재직하던 교수로, 또한 의사이자 연금술사이자 역사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한 매우 박학다식한 자였다. 그러나 은퇴한 후로는 인적 없는 페레플럿의 늪지대에 은둔해서 살고 있었다. 그는 시리를 발견하자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치료했다. 정신을 차린 시리는 비소고타에게 자신이 겪었던 온갖 고초를 고백하는 한편, 자신을 쫓는 자들로부터 피할 방법을 고민했다. 이때 시리는 비소고타를 통해 '제비탑(Tower of Swallow)'에 이계로 떠날 수 있는 포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리는 그곳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다.

 

 

시리에게 이계에 대해 알려준 비소고타.

 

 

스켈른, 리엔스, 본하트 일당 역시 시리가 제비탑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뒤쫓았다. 그러나 도중 리엔스는 오히려 시리에게 당해 사망하고 스켈른도 간신히 도망친다. 본하트만이 끝까지 시리를 추격했지만 그 역시 결국 시리가 제비탑의 포탈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후 시리의 추격을 포기한 스켈른 일당과 본하트는 빌제포츠에게 합류한다.

 

 

스켈른 일당을 따돌리고 제비탑으로 향한 시리

 

 

시리는 제비탑의 포탈을 통해 성공적으로 이계로 진입했다. 그러나 그곳은 시리가 원하던 세계가 아니었다. 그곳은 아엔 엘르라 불리는 엘프가 지배하는 죽어가는 땅, B의 세계였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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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롤트는 긴 시간동안 브로킬론에서 치료를 받았다. 부상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그는 시리가 현재 닐프가드 지역에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곧장 단델라이언과 함께 그녀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도중에 게롤트의 의사와 관계없이 시리를 찾는 것을 도와줄 멤버들이 하나씩 합류하게 된다. 착한 뱀파이어(?) 레지스, 브로킬론 숲에서 활동하는 인간 궁수 밀바, 본래 에미르의 명을 받고 시리를 추적하다가 그녀에게 연정을 느껴 전향한 닐프가드 장교 카히르, 장래희망이 매음굴을 운영하는 포주인 화끈한 소녀 앵굴로메가 바로 그들이었다.

 

 

게롤트의 새로운 동료들

 

 

하지만 누구보다 게롤트와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친구는 졸탄 치베이라는 드워프였다. 졸탄은 2차 대전쟁 때문에 드워프들을 이끌고 피난을 가던 중 게롤트와 우연히 만났고, 서로 마음이 통해 그와 바로 친구가 되었다. 비록 딸린 식구들이 많아 둘은 곧 헤어지게 되었지만, 이때 졸탄은 우정의 표시로 자신이 갖고 다니던 시힐(Sihil)이라는 명검을 선물했다. 이후 게롤트가 전해 들은 졸탄의 소식은 그가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마하캄(드워프의 고향) 의용군을 만들어 북부 왕국 쪽의 용병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이었다.

 

 

단기간에 게롤트와 소울메이트가 된 졸탄 치베이

 

 

한동안 시리를 찾으려는 게롤트 일행의 노력은 그다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게롤트는 어쩌다보니 리비아 군과 닐프가드 군의 전투에 참전하여 활약하게 되었고, 때문에 '리비아의 게롤트'라는 명성도 얻었다. 하지만 시리를 찾기 위해 다시 탈영했으며 계속해서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지만 시리를 찾을 뚜렷한 단서를 얻지는 못했다. 곧 겨울이 다가오자 일행은 일단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중립국 지역인 <투생>으로 향했다. 그리고 게롤트는 그곳에서 투생 왕실의 자문 마법사로 활동하던 프린질라 비고를 만나 그녀와의 육체관계에 탐닉하게 된다.

 

사실 이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프린질라는 필리파가 보낸 일종의 첩자였다. 필리파는 최근 '어떤 이유'로 마찬가지로 시리를 찾고 있었고, 때문에 경쟁자인 게롤트의 발을 묶어놓기 위해 프린질라를 보내 미인계를 쓰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 프린질라는 자신의 역할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미인계를 넘어 진짜로 게롤트에게 빠지게 된다. 가볍게 가지고 놀기엔 게롤트는 너무 매력적인 남자였다.

 

 

게롤트는 투생에서 두 달 간이나 머무른다. 하루종일 그거 하면서...

 

 

필리파가 시리를 원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얼마 전, 로지 오브 소서리스의 멤버들은 두 번째 회담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필리파는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했다. 로지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라라 도렌의 피를 이어받은 소녀, 시리를 지부에 끌어들이자는 제안이었다. 그동안 필리파는 빌제포츠가 북부 왕국을 배신하고 시리에 집착한 이유를 조사하다가 시리가 엘프족 고대 혈통의 후손으로 특별한 마법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리파는 시리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그녀가 궁극적으로 제안한 것은 시리를 <코비르 왕국>의 왕세자와 결혼시켜 코비르를 아예 공식적으로 마법사가 직접 통치하는 나라로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사실 필리파는 이미 르다니아의 왕 비지미르 2세가 죽고나서 딕스트라와 함께 르다니아의 공동 섭정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르다니아 왕국은 그녀가 마법사 왕국을 만들겠다는 일종의 정치 실험을 할 대상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차기 왕으로 꼽히는 어린 라도비드 왕자를 제거하고 왕위를 찬탈할 경우, 르다니아 내부의 반란은 물론이고 다른 국가에서도 마법사들에 대한 견제가 심해질 것은 뻔한 일이었다. 반면 코비르 왕국은 북부 왕국 중에서도 상당히 작은 편에 속했고, 평소에 마법사의 대우가 가장 좋은 나라이기도 했다. 평화로운 방법으로 마법사 왕국을 만들기 위해선 왕족이면서 마법 능력을 타고난 시리를 코비르와 연결시켜 이용하는 것이 그녀가 생각하기엔 최적의 방법이었다.

 

 

마법사들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로지 오브 소서리스>

 

 

당연히, 예니퍼는 시큰둥했다. 그녀는 핀다베어에 의해 봉인된 지 47일 만에 다시 깨어났다. 핀다베어는 예니퍼를 보호하기 위해 봉인했다가 깨운 것이라 둘러댔지만 예니퍼는 믿지 않았다. 다만 로지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수긍하여 로지에 가입했고, 오래전 자신의 눈을 실명하게 만들었던 프린질라 비고에게는 사과를 받아냈다. 그러나 필리파의 제안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가 정신을 쏟은 것은 빌제포츠에 대한 소식이었다. 예니퍼는 빌제포츠가 시리의 능력을 추출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자신이 납치한 소녀들에게 생체실험을 자행했으며 시리 역시 혹시나 빌제포츠에게 붙잡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자 충격에 휩싸였다. 급기야 예니퍼는 직접 시리를 찾아내겠다는 생각으로 프린질라의 도움을 받아 로지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과거 시리의 부모가 탔던 배가 침몰한 위치에서 시전된 마법을 역추적하여 포탈 마법을 통해 빌제포츠의 본거지로 들어갔다. 그곳은 닐프가드 에빙 지역의 호수가 있는 산악에 위치한 <스티가 성>이란 곳이었다.

 

 

코라스 사막 서쪽에 위치한 <스티가 성>으로 향하는 예니퍼

 

 

그동안 빌제포츠는 에미르 황제와 결별 후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타네드 사건 직후 에미르를 배신한 사실을 들켜 정치적 궁지에 몰렸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빌제포츠는 에미르에게 불만이 있는 닐프가드 장교 스테판과 손을 잡고 스티가 성에서 세력을 늘리는 한편 시리의 흔적을 계속해서 쫓았다. 그러나 성과가 없어 실망스럽던 찰나, 좋은 기회가 제 발로 찾아왔다. 예니퍼가 직접 스티가 성으로 찾아온 것이다.

 

빌제포츠는 즉시 예니퍼를 사로잡아 감금 및 고문했다. 예니퍼라면 시리의 소재를 알고 있으리란 생각에서였다. 예니퍼는 스티가 성의 마법장벽을 생각하지 못하고 무작정 찾아갔다가 디메리티움 수갑까지 채워진 채 빌제포츠의 실험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리가 성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빌제포츠는 온갖 고문과 협박에도 꿈쩍하지 않는 예니퍼에게 정보를 캐내는 것을 포기했다. 다만 시리가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찾아올 것으로 생각했으며 또한 적절한 상황에 이용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고 예니퍼를 죽이지는 않고 감금해 두었다. 예를 들면 예니퍼에게 강한 최면을 걸어 에미르 황제를 암살하게 한 후 본인도 자­살하게 만드는 계획이라던가... 활용가치는 얼마든지 있었다.

 

 

예니퍼에게 생체실험과 고문을 자행하는 빌제포츠

 

 

이런 예니퍼의 위기 상황을 먼저 알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시리였다. 이계의 엘프족 왕이 보여준 어느 마법의 거울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시리는 예니퍼를 구하러 갈 수 없었다. 그녀는 이계에서 그들의 왕의 아이를 낳기를 강요받고 있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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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는 아엔 엘르가 지배하는 이계로 넘어간 후 자신의 세계로 다시 돌아올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그곳은 마법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 일단 들어오면 외부 세계로 나갈 수 없었다. 결국 시리는 그동안 자신을 끈질기게 뒤쫓던 자들 중 하나인 <와일드 헌트>의 왕 에레딘에게 붙잡히게 된다.

 

 

 

마침내 등장한 위쳐 시리즈 진 최종보스, 킹 오브 와일드 헌트 에레딘.

 

 

와일드 헌트란, 최근 C의 세계에서 대륙 곳곳에 출몰하기 시작해 인간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하고 아이들을 납치해가던 정체불명의 광란의 사냥꾼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들의 정체는 본래 엘프가 갈라지기 전의 B의 세계에 남아있던 엘프들로, 죽어가는 자신들의 세계에서 C의 세계로 이주하기 위해 라라 도렌의 혈통을 가진 시리를 추적해왔다. 그 원정대의 선봉에 선 자가 바로 아엔 엘르의 기마대 대장 에레딘이었다. 

 

시리는 그들의 도시인 '티르 나 리아(Tir na Lia)'에서 에레딘을 비롯해 그들의 국왕인 오베론, 총독 게엘스, 그리고 이 모든 혈통 놀음의 애초 기획자였던 현자 아발라크와도 만났다. 그들은 시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만약 본래 자신이 살던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면, 자신들의 국왕인 오베론 뮈르세타흐와 잠자리를 가진 뒤 아이를 임신해 출산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그들은 가로막혀 있는 마법 장벽을 우회하여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이때 시리 나이 15세다.)

 

 

애한테 다짜고짜 임신부터 요구하는 쑤레기 새퀴들

 

 

시리는 어쩔 수 없이 제안을 수락했다.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그 길 하나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베론 국왕은 650여 년을 살아오면서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성욕도, 삶에 대한 의지도 전혀 없는 상태였다. 시리가 아닌, 왕이 잠자리를 거부한 것이다. 그는 침대 위에서도 알듯 말듯 한 대화만 할 뿐 도통 시리와 잠을 자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리 입장에서 오베론과의 만남은 전혀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었다. 시리는 오베론의 거처에서 자는 도중 꿈에서 게롤트와 예니퍼가 살아있으며, 특히 예니퍼는 어딘가에 묶인 채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시리는 예니퍼를 구하기 위해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오베론이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다는 시리의 불평을 들은 에레딘은 특별하게 만든 최음제를 시리에게 주면서 이걸 몰래 오베론에게 먹여보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약을 먹은 오베론은 성욕을 일으키는 대신 이상 증세를 보이고, 급기야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된다. 이때 오베론은 죽기 전에 시리를 어떻게든 이곳에서 달아나라고 재촉하기 위해 거울을 통해 구체적으로 게롤트와 예니퍼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얼마 후 오베론은 숨을 거뒀다. 평소 그가 피스텍(위쳐 세계의 마­약)을 복용했기에 대부분 사람들은 왕이 그저 약물 과다로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도 왕이 설마 에레딘의 계략으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야 이거... 정력제 맞아...?

 

 

왕이 죽음으로써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시리는 엘프들로부터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특히 입막음을 하려는 에레딘의 추적이 집요했다. 애초에 그는 시리를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즈음부터 아발라크는 시리에게서 라라 도렌의 연민을 느껴서인지 오히려 시리를 돕기 시작했다. 여전히 시리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결국 현자라는 자신의 위치에서 행동하기로 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뭣보다 시리를 결정적으로 도운 것은 일전에 사막에서 만났었던 유니콘 이화라콱스였다. (유니콘들은 본래 차원을 넘나들 수 있다.)

 

이화라콱스는 시리에게 강을 따라 나가면 마법의 장벽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에 시리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밤에 보트를 훔쳐 강을 따라갔다. 도중 지속적인 에레딘의 추격이 있었지만 시리는 어떻게든 따돌리고 도망쳐 마침내 아엔 엘르를 탈출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자신의 세계로의 귀환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아직 통제하지 못하는 시리는 번번히 낯선 세계로 들어섰다.

 

다행히 시리는 차원 너머의 세계들 중에서 자신을 돕는 자를 만날 수 있었다. 호수의 여인 니무에라 불리는 자였다. 니무에는 시리가 살고 있던 세상으로 들어가는 포탈을 여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시리의 행운을 빌었다.

 

 

<아서왕 전설>에 등장하는 그 니무에가 맞다. 이 세계에서 '갤러해드'도 등장한다.

 

 

본래의 세계로 간신히 돌아온 시리는 곧장 예니퍼를 구하기 위해 빌제포츠가 은거해 있는 스티가 성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성의 경비대에게 대담하게 빌제포츠를 만나고 싶다고 직접 전했다. 그들의 안내로 빌제포츠를 만난 시리는 이제 자신을 얻었으니 예니퍼를 풀어주라고 했지만 당연히 이 순진한 요구는 가차 없이 묵살당했다. 빌제포츠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붙잡아 가뒀다. 사실 시리는 자신의 시공간 이동 능력을 믿고 과감하게 들어간 것이었으나 빌제포츠가 성 전체에 강력한 마법장벽을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시리는 꼼짝없이 붙잡혀 능력을 추출당하고 죽을 위기에 처한다. 성 안에는 그동안 빌제포츠가 납치한 소녀들을 이용해 자궁을 적출하는 등 끔찍한 생체실험을 해온 흔적들이 즐비했다.

 

 

너무 무모했던 시리의 예니퍼 구출 작전

 

 

한편 투생에 눌러앉았던 게롤트 역시 예니퍼에 대한 소식을 알게 된다. 닐프가드 정보국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중립국 투생까지 와서 역적모의하던 스테판, 본하트, 리엔스 일당을 통해서였다. 이들의 모의를 우연히 엿듣게 된 게롤트는 예니퍼가 빌제포츠에게 붙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 즉시 투생을 떠나기로 한다.

 

당연히 프린질라는 끈질기게 매달렸다. 게롤트는 마지막으로 그녀와 뜨겁게 한 판(...) 치뤄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 후 레지스를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스티가 성으로 떠났다. 이때 게롤트는 단델라이언을 통해 딕스트라에게 한 장의 '편지'를 전한다. 그리고 프린질라에게도 이별의 선물로 빌제포츠의 위치를 알아냈다며 이를 알려주었다. 게롤트의 우람한 매력에 홀딱 빠져 있던 프린질라는 그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 역시 환영마법이 담긴 '메달'을 게롤트에게 선물로 주었다.

 

곧 게롤트의 정보를 바탕으로 로지 오브 소서리스의 마법사들은 리스-룬 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빌제포츠는 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살고 있지 않았다. 로지의 마법사들은 게롤트에게 제대로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때문에 프린질라는 그녀들에게 한동안 눈총을 받아야 했다.

 

 

여러 여자 울리고 자기 여자 구하러 온 마성의 남자 게롤트

 

 

스티가 성은 빌제포츠의 부하들이 득시글했다. 또한 그가 쳐놓은 온갖 결계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인의 눈에 잘 띄지도 않고 빌제포츠 본인을 제외하고는 마법을 구사할 수도 없었다. 다만 게롤트 일행이 성에 도착하기 직전에 시리가 이 스티가 성에 도착한 덕분에 성의 인력 대부분이 시리의 감시에 동원되었고, 그래서 게롤트 일행은 소수의 수비 병력만 처치하여 손쉽게 성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게롤트는 곧 그들 중 하나의 입을 통해 스티가 성에 시리도 함께 붙잡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롤트는 비행 능력이 있는 뱀파이어 레지스를 일종의 선발대로 삼아 성의 탐색을 맡기고 다른 멤버들과 함께 성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밀바는 적의 화살에 맞아 죽었고,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레지스는 탐색 끝에 빌제포츠 부하들의 엄중한 감시 속에 실험실에 갇혀 있는 시리를 발견했다. 레지스는 실험준비를 하고 있던 부하들을 모두 죽이고 시리를 구해주었다. 하지만 직후 빌제포츠에 의해 그의 고열마법에 녹아 찢겨져 버린다. 시리 역시 본하트에게 발견되어 그에게 쫓기게 되고, 이에 카히르가 본하트를 막아서고 시리는 앵굴로메와 함께 도망쳤으나 카히르도 얼마 버티지 못했다. 그는 본하트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으며 부상당한 앵굴로메 역시 출혈이 심해 결국 시리의 팔에 안긴 채로 사망한다.

 

 

치열한 전투 끝에 하나씩 죽어가는 동료들

 

 

시리는 결국 자신을 뒤쫓아온 본하트와 1:1 대결을 펼쳤다. 하지만 정면승부로는 절대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기에 시리는 바닥이 거의 꺼져서 몇몇 버팀목만이 남아 있는 방으로 본하트를 유도하여 칼싸움을 벌였다. 일전에 케어 모헨에서 장애물을 뛰어넘고 피해 다니며 상대를 공격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유효하게 작용했다. 시리는 먼저 왼쪽 어깨를 찔렸으나 본하트가 버팀목 위에서 잠시 중심을 잃은 틈을 타 가슴 쪽에 상처를 입힌 후, 버팀목을 잽싸게 옮겨타면서 그의 등 뒤로 돌아 일격을 가했다. 이에 치명상을 입은 본하트는 버팀목에서 미끄러져 아래층으로 굴러떨어져 버린다.

 

시리가 쓰러져 있는 본하트에게 다가가자 아직 숨이 붙어 있던 그는 뻔뻔하게 살려달라고 구걸했다. 웬일인지 시리는 그를 재차 찌르지 않고 그의 목에 걸려 있는 위쳐의 메달들만 챙기고 돌아섰다. 이때 본하트는 있는 힘을 다해 일어나 나이프를 꺼내들고 몰래 그녀의 등 뒤로 접근했지만, 시리가 갑자기 돌아서며 본하트의 급소를 칼로 찔렀고 결국 본하트는 피를 쏟으며 쓰러져 죽는다. 그렇게 시리는 마침내 복수를 이루었다.

 

 

세계관 내 최고의 전사를 극적으로 쓰러뜨린 시리

 

 

그사이 게롤트는 드디어 예니퍼를 만났다. 하지만 재회의 기쁨을 나눌 새도 없이 빌제포츠의 공격을 받게 된다. 여전히 마법을 쓰지 못하는 예니퍼는 부상을 입고 쓰러졌고, 게롤트 역시 일방적으로 밀렸다. 빌제포츠는 자만하여 게롤트에게 저번처럼 1:1 물리 싸움으로 끝을 내주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게롤트는 빌제포츠의 봉술에 맥을 못 췄지만 그에겐 일전에 없었던 한 가지 물건이 있었다. 빌제포츠가 지팡이로 게롤트의 왼쪽 어깨를 내려치려는 순간 게롤트는 투생에서 프린질라가 선물로 줬던 메달을 작동시켜 환영마법을 구사했다. 아이템을 통한 마법이었기에 스티가 성에 걸린 마법장벽에도 걸리지 않았다. 

 

이때부터 빌제포츠는 환영마법에 걸려 게롤트를 맞추지 못하고 조금씩 빗나가게 된다. 시리에 의해 한쪽 눈을 잃었던 영향도 컸다. 그 틈에 게롤트는 빌제포츠를 발로 걷어찬 후 졸탄이 선물했던 명검 시힐로 마침내 그의 숨통을 끊는다.

 

 

자만심 때문에 결국 죽음을 초래한 빌제포츠

 

 

악의 축 빌제포츠와 본하트가 모두 죽은 후, 게롤트와 예니퍼, 시리 세 사람은 드디어 오랜만에 재회하게 된다. 느그 구하려던 동료들은 다 죽었는데... 하지만 아직 빌제포츠의 잔당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한숨을 돌릴 상황은 아니었다. 예니퍼는 고문 후유증과 부상으로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이었기에 성을 빠져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반대로 시리는 본하트를 쓰러뜨린 일로 자신감이 절정에 달해 있던 상황인지라 무리한 태도를 보였다. 스켈른의 부하가 석궁을 발사하려는 것을 보고 피하는 대신 날아오는 화살을 자신의 칼로 막아낸 것이다. 위쳐 시술을 받지 않은 시리로써는 대단한 일이었지만 게롤트는 다시는 그런 위험한 짓을 하면 혼내주겠다며 시리를 꾸짖었다. 

 

 

내가 바로 본하트를 이긴 여자다!

 

 

스티가 성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종결시킨 것은 의외의 세력이었다. 에미르 황제가 이끄는 닐프가드의 친위 정예병 '임페라(impera)'가 스티가 성에 들이닥친 것이다. 황제의 군대는 스켈른과 그 잔당들을 반역 혐의로 모조리 체포하고 죽은 게롤트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사실 에미르 황제가 스티가 성으로 오게 된 것은 게롤트의 의도였다. 그는 앞서 투생에서 출발하기 전에 딕스트라에게 편지를 한 장 전달했었는데, 거기엔 스티가 성에 빌제포츠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빌제포츠를 쫓고 있던 딕스트라의 지원군이 오기를 바란 것이다. 하지만 딕스트라는 본인이 직접 나서는 대신 그 편지를 다시 적국의 에미르 황제에게 전달했다.

 

에미르 황제는 바티에를 시켜 자신을 배신한 빌제포츠와 그 세력을 추적하고 있었다. 따라서 스티가 성의 일당을 체포하는 것은 곧 닐프가드의 일이기도 했다. 에미르는 현장에 있던 스테판을 심문하여 그의 역모 사실은 물론, 그가 공주인 시리를 학대하고 그녀의 얼굴에 흉터까지 만든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분노한 에미르는 스테판에게 교수척장분지형을 내려 처참하게 끔살한다.

 

 

중세 유럽에서도 가장 끔찍한 형벌로 알려진 교수척장분지형

 

 

에미르는 오랜만에 만난 게롤트와 비밀 면담을 하며 그에게 자신의 비밀을 모두 털어놓았다. 듀니라는 이름으로 불린 시절부터 게롤트 덕분에 저주를 풀고 돌아가던 길에 아내 파베타가 죽게 된 일, 시리를 원하는 이유 등등. 그리고 그는 시리를 데려가겠다며 그동안 시리를 지키고 보살펴준 게롤트와 예니퍼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에미르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둘을 살려둘 수는 없다며 마지막 배려로 처형하는 대신 그들에게 자­살을 권했다.

 

이에 게롤트와 예니퍼는 마지막으로 같이 목욕을 하며 죽을 준비를 한다. 적당한 분위기가 되자 게롤트는 목욕탕 밖을 지키고 있던 임페라 병사에게 손목을 긋기 위해 칼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밖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계속 요청하자 병사 대신 갑자기 시리가 들어오며 뜻밖의 소식을 전해왔다. 웬일인지 에미르가 생각을 바꾸어 시리를 포함해 세 사람을 모두 놓아두고 스티가 성에서 철수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시리가 설득했거나, 시리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던 에미르가 고민 끝에 결정한 듯하다.

 

 

이후 에미르는 북부 왕국들과의 2차 전쟁을 마무리하는데 주력했다. 전쟁 초반은 닐프가드가 거세게 밀어붙였지만 중간에 겨울이 낀 탓에 보급 문제로 테메리아 침공은 다음 봄까지 미뤄진 상태였다. 이듬해 봄, 서로 대립하던 북부 왕국들은 공통의 적인 닐프가드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하나로 뭉쳤다. 한동안 남북 사이에서 간을 봤던 베르덴 왕국도 키스트린 왕자가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권을 잡으면서 다시 북부 측에 연합했다. 르다니아, 코비어, 포비스, 마하캄의 드워프들도 모두 테메리아 전선에 병력을 보냈고, 이로 인해 각국의 군대는 <브레나> 마을을 기점으로 서로 대치하게 된다.

 

브레나 전투는 매우 중요한 기점이었다. 이 전투에서 테메리아의 폴테스트 왕과 존 나탈리스 장군이 이끄는 북부 연합군은 메노 코에훈이 이끄는 닐프가드 제국군을 상대로 기적적으로 승리하여 2차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불러온다. 지난해 닐프가드에게 에이단까지 영토를 내주었던 북부 연합은 브레나 전투 승리를 기점으로 동부, 서부, 중부 전선에서 동시에 대규모로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북부 연합은 우선 중서부 전선에서 존 나탈리스 장군의 지휘 아래 소든 지역과 브뤼게, 베르덴 지역까지 수복하는데 성공했다. 캐드웬 왕국 역시 에이단 왕국군과 규합하여 동부 전선에서 거세게 반격하여 에이단을 되찾았다. 닐프가드 제국은 전선을 리버델과 신트라, 앙그렌으로 물려야 했다. 

 

결국 1268년 4월 2일, 에미르 황제를 비롯한 각국의 지도자들은 신트라에 모여 정전협정을 맺는다. 협정서에 따르면 돌 블라타나는 에이단 왕국의 자치국이 되었고, 신트라는 정식으로 닐프가드 제국이 통치하기로 합의되었다. (에미르가 가짜 시리와 결혼하여 왕좌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 서로 간의 전쟁 포로도 모두 송환했다. 협정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세력은 브레나 전투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테메리아 왕국이었다. 이후 그들은 북부 정계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브레나 전투를 기점으로 양상이 뒤집힌 2차 대전쟁

 

 

한편 게롤트와 예니퍼, 시리 세 사람은 과거청산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시리의 과거 행적을 되짚으며 그녀를 도와준 이들을 찾아가 보답을 해주거나 그녀를 괴롭힌 자들을 혼내주는 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게롤트는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투생의 미망인 여공작과 열애하다 바람을 피운 탓에 평소처럼 쫓겨나 방랑 중이던 단델라이언, 최근 맺어진 정전협정 덕분에 자유롭게 북부를 여행하던 졸탄 치베이, 그리고 언제나처럼 게롤트와 시리를 반갑게 맞아준 트리스까지. 게롤트는 아주 오랜만에 그들 모두와 한자리에 모여 어느 술집에서 회포를 풀 수 있었다.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롤트.

 

 

하지만 그러한 행복은 길지 않았다. 1268년, 리비아에서 인간들이 비인간들을 극단적으로 탄압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그곳에 거주하던 비인간의 1/3이 사망한 대학살 사건이었다. 하필이면 그 현장에 게롤트가 있었다.

 

얼마 전 청산 여행이 모두 마무리된 직후, 게롤트와 시리, 예니퍼는 잠시 헤어졌었다. 게롤트는 리비아로 볼 일을 보러 떠났고, 예니퍼와 시리는 로지의 소서리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필리파를 비롯한 로지의 멤버들은 애초의 목적대로 시리를 로지에 영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설득을 시도했다. 그러나 시리는 게롤트를 만난 후 결정하겠다며 시간을 달라고 한 다음 예니퍼, 트리스와 함께 다시 게롤트가 있는 리비아로 향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대규모 폭동의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게롤트는 더 이상 검을 잡지 않고 살겠다고 맹세를 했었다. 하지만 오지랖이 넓은 탓에 그는 비인간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지막이라고 되새기며 한 번 더 칼을 들고 폭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비인간을 무차별로 살해하려는 학살자들을 홀로 막아내기엔 중과부적이었다. 결국 이 현장에서 게롤트는 한 폭도의 쇠스랑에 복부를 찔려 과다출혈로 사경을 헤매게 된다. 

 

 

리비아의 비극

 

 

뒤늦게 게롤트가 쓰러져 있는 곳에 도착한 예니퍼는 그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거듭 치유주문을 걸었다. 하지만 부상이 너무 심해 별 효과가 없었다. 설상가상 마법 남발로 예니퍼마저 탈진해 쓰러졌고, 그녀 역시 또 다른 폭도의 쇠스랑에 찔린다. 결국 게롤트와 예니퍼는 그날, 대학살의 현장에서 함께 숨을 거둔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죽음을 맞이한 게롤트와 예니퍼.

 

 

두 사람의 시신을 수습한 것은 시리였다. 그녀는 게롤트와 예니퍼를 배에 태워 무작정 호수의 여인이 있는 아서왕의 세계로 향했다.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